“도둑질하지 말지니라”(신 5:19)

  “도둑질하지 말지니라”(신 5:19)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은 단순히 이웃의 것을 훔치는 것에 대해서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의미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번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다. 그것에 대한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한다. 즉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영광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도둑질하지 말라함은 이웃의 것을 자신의 목적으로 유용하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1) 신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사회생활에서 나타난다. 이것을 열매로 나타난다고 한다.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일로 드러낸다. 가장 무서운 죄가 이웃의 것으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다. 물질을 훔치는 것과 마음을 훔치는 것이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었다.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삼하 15:6) 그리하여 아버지 다윗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은 잘못된 사상으로 거룩한 것을 손상시킨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죄를 품으면 하나님께서 듣지 아니하신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5) 도둑질은 다른 사람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바가지 씌우는 행위이다. 또한 이웃과 함께 나눌줄 모르는 이기적인 행위이며 다른 사람의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라 하신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소유권은 인정하시나 소유권은 ...

“간음하지 말지니라”(신 5:18)

  “간음하지 말지니라”(신   5:18) 간음이란? 혼인은 남녀 간의 약속의 관계로 이루어진 것이다. 성적인 욕망을 풀기 위한 성적인 타락과는 분별하여 생각하여야 한다. 남녀의 혼인(약속)관계가 하나님의 영원한 관점으로 연결됨으로 말씀을 이해하라는 것이다. 결혼은 하나님이 짝을 지어 주신 것이라 한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마 19:6) 혼인 관계로 오는 일상의 변화가 있다. 성격 습관 문화의 차이 등에서 오는 문제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의 범위를 지키지 못하였을 때에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성적 타락이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약속의 백성과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묘사하고 있다.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랑되시는 하나님을 외면하였다.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2) 그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깨뜨렸다고 함은 약속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음을 말한다. 즉 간음이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약속의 말씀을 뒤로하고 다른 신과 함께 한 것을 말한다. 혼인관계가 깨어짐으로 결국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로 깨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며 살아야 함을 상기시킨다. 혼인의 문제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결론이 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랑이 되시며 우리들은 그의 신부가 된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계19:9) 남녀 간의 약속의 관계로 혼인이 이루어짐과 같이 하나님과 백성들 간에도 약속으로 이루어졌다. 그 약속은 하나님의 계명이 된다. 그 계명을 지키는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살인하지 말지니라”(신 5:17)

  “살인하지 말지니라”(신 5:17) 살인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이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 이웃을 살인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으로 없어져도 상관이 없다는 마음에서 나온다. 즉 사람의 존재와 가치를 무시하는 상태에서 살인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살인은 개인적인 합법화되지 않은 살인을 말한다. 그래서 고의적으로 살인한 자는 반드시 죽이라 한다.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출 21:14) 고의로 살인한 자들의 마음에는 쓴뿌리가 있다. 개인의 이기적인 마음이 있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존재를 무시할 때에 살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는 고의적으로 살인한 자를 죽이라 한다. 그 이유는 악이 전염되는 것을 막고 죄에 대하여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율법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그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었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신 6:8) 눈썹과 눈썹 사이를 미간이라 한다. 사람의 뇌 가운데 전두엽이라는 것이 있다. 이마 뒤쪽에 있는 것으로 뇌에서 보내오는 정보를 판단을 하며 행동을 조절하는 곳이다. 즉 내 몸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통과시키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너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과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 안에 있는 쓴뿌리를 고치기 전에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시고 사랑하여 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서로 사랑하라 하셨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7:12) 새로운 생명의 속성은 사랑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제 5계명부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친다. 즉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이다. 만일 이 도리가 지켜지지 아니하면 다툼과 전쟁이 일어난다. 부모를 통하여 배우는 것은 순종이다.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순종을 하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인간은 본래 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순종은 이해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명령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이 있기 때문이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2-3) 또한 부모에게 불순종하거나 치는 자들에게는 죽이라 명령하셨다.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7) 부모를 공경하는 이유이다. 그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위치이다. 하나님의 대리자이며 위탁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에게만 경외하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19:3)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2) 부모에게 공경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다. 이것은 자신보다 높으며, 자신을 위에서 통치하는 분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경하지 않는 것은 저주와 경멸뿐이다. 그것은 교만한 마음으로서 권위자와 같아지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계명을 이해하고 지키려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모든 말씀이 명령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자들에게 선포하십니다. 그들의 생명의 주인은...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 18: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 18:10)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리고 제일 먼저 얻는 유익이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복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 더 나아가 화목케 하는 직분까지 주셨다. 그리스도의 대사로 임명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었다고 함은 교회 안에 있는 자들과 화목하게 하는 능력과 실력을 가졌다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이 섬김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4)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며 본을 보여 주셨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7) 그리고는 섬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맡기겠다고 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긴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눅 22:29) 예수님과 같이 겸손히 섬기는 자의 복이 있다. 주님과 함께 식탁을 함께 하며 마지막 심판 때에 보좌에 앉아 열 두 지파를 다스린다는 것이다.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4)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영생을 세상 사람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신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 뒤를 따른다. 즉 예수님의 생각과 제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섬기는 나라를 세우시려 하는 것이고 제자들은 출세와 성공을 이루려는 생각이다. 제자들의 생각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왕은 예수님이 되시고 권력이 막강한 좌우에 누가 앉을 것인가에 논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아버지께 의존적인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라 하여 어린아이를 세우신다. 그리고는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의존적인 것을 친히 보여 주신다. 즉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하나님께 의존적인 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의 생각에는 세상의 권력을 잡는 것으로 생각을 하였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가치가 다르다. 이것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웃나라들처럼 왕을 달라고 사무엘에게 요구하였다. 이 말씀을 들으신 하나님은 저들이 나를 왕으로 섬기기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 8:7)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의 다른 점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사랑과 자비로 세워져 가지만 세상 나라는 사람의 권력으로 세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선하심으로 인도와 보호하심으로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온 것이라 한다. 반면에 세상의 권력은 백성들의 좋은 것을 빼앗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증거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사람들의 맏아들을 대신하여 레위인을 세워 하나님의 일을 맡겼지만 세상 나라에서는 맏아들과 딸들을 왕에게 바쳐야 하고 토지의 좋은 것은 왕과 신하들에게 바쳐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왜 사람들이 높은 권력에 오르려 하나요? 그것은 사람을 권세로 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신 5: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신   5:12) 안식일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창세기와 출애굽기 그리고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시대적인 배경의 차이가 있다. 창세기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 출애굽기는 창조주를 거룩하고 복된 날로 기억하라 한다. 그러나 신명기에서는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창세기와 출애굽기에서는 너희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안식을 하게 된 것을 감사하라 한다. 반면 신명기에서는 너희 조상들이 애굽에서 종이었다. 그런데 너희는 노예의 상태에서 건져 주시고 새로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이다. 이것을 정리하면 억눌려 있는 자들을 풀어 주시고 안식과 자유를 주신다 함이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 61:1)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안식일의 은혜가 온전케 된다. “그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 주인이니라”(막 2:28)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여호와와 약속된 율법을 지켜야만 한다. 이것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과 거룩과 안식으로 택함을 받은 자들을 초청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세계란 영광의 세계에 도달하는 신비한 방법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7)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